하나의 가능성, 이를테면 김 수철의 '비애' 를 연상시키는 
음악, 혹은 그 곡이 직접 무대를 통해 흘러 나온다. 
곡이 끝나면 막이 오른다. 무대 중앙에서 약간 왼쪽으로 
TV수상기, 간이 침대, 석고상, 라디오, 옷가지, 의자, 
잡다한 식기 도구, 탁자 겸 책상으로 보이는 구조물이 
보인다. 그 위에 몇 개의 라면과 달걀 꾸러미가 놓여 있고 
한 사내가 거기서 식사를 하고 있다. (은연중에 이곳이 
사내의 거처임을 말해 주지만 이 극에서 공간개념에 대한 
물리적 합리적 인식은 철저히 부인된다)

초췌한 한 사내가 식사를 한다 
아주 맥없이 식사를 한다 먹는 둥 
마는 둥 식사를 한다 밥숟갈을 떠서 
입에 넣다 말고 유심히 수저를 
노려본다 밥을 그릇에 다시 
쏟는다 수저도 놓고 오른 손으로 
연달아 양쪽 뺨과 관자놀이를 받쳐가며 
무언가 깊은 생각에 잠긴 듯 한 동안 
멍한 상태로 있는다 다시 밥 수저를 
든다 이렇게 아주 여러번 반복하면서 
어렵게 어렵게 식사를 한다 
식사가 끝나면 신문을 읽는다.

(이때 
슬라이드로 여러 개의 시사뉴스를 다룬 사진들을 
무대 오른 편 윗쪽에 투사시킨다)

신문을 읽다가 화가 난 듯 재빨리 접어 바닥에 팽개친다. 
라디오를 켠다. 준비된 몇 개의 유행가가 흘러 나온다. 가령 

1) 장 미화의 "안녕하세요 또 만났군요" 
2) 현철과 벌떼들 ... 
3) 김 영동 "어디로 갈꺼나"를 듣는다.

TV를 본다. 싱거운 프로그램에 적의를 품은 듯 
잠시 화면을 뚫어지게 노려보다가 얼마 안 있어 
꺼버린다. 간이 침대에 눕는다. 잠시 적막이 흐르고 
무대 오른 편으로 한 쌍의 남녀 대학생이 나오면서 
대화를 시작한다.

여대생 :      그럼 말야, 넌 자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남대생 :     자유? 그건 아주 당연한 거야, 자연의 순리라고, 아니 
               생명의 본성이지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리고 
               개나 도야지도 때리고 못살게 구는 걸 좋아하는 
               법이 없지 그들도 아마 지금처럼 인간생활에 
               길들여지지만 않았다면 제가 가고 싶은 대로 벌써 
               어디로든 가버렸을 걸. 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차면 밀어내고... . 
               이 세상의 명줄을 가지고 있는 생물들은 다 그렇지. 하물며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우리 인간들이야 말할 것도 없지 않겠어? 
               타인에게 해가 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우린 우리의 자유를 
               극대화시킬 권리가 충분히 있다고 나는 생각해 그리고 그건 
               그렇게 되어야 하구. 우리가 알고 있는 법률이란 것도 실은 
               이 자유를 근거지우기 위해서 나온 것이 아닐까. 

여대생 :     그래? (놀라면서도 약간 비꼬는 투로) 그러고 보니 너 참 
               아주 많이 생각했구나. 그렇다면, 그렇다면 말야 그 
               자유가 침해당하거나 유린당했을 땐 우린 어떻게 하지? 

남대생 :      (단호한 어조로 오른 주먹을 불끈 쥐며) 싸워야지, 싸워서 
               되찾아야지. 왜 이런 이야기 있지 박 누구든가 
               그 유명한 노동자 시인이 한 이야기... 

여대생 :      아 - 아 박노해? 

남대생 :      으응, 그래 그래, 이제 생각나는 군. 만인을 위해 투쟁할 때
               진실로 나는 자유롭다 (흥분해서) 이 말 얼마나 멋진 
               말이냐! 난 이 말만 생각하면 가슴이 다 설렌다니까. 

여대생 :      (가소롭다는 듯) 흥, 아주 신이 나셨군? 그럼 이런 말 알아? 
                이건 내가 깔릴 지브란의 예언자라는 책에서 본 건데 ... , 
                너 참 예언자 읽어 봤니? 

남대생 :     예언자? 글쎄..., 그게 무슨 책이냐? 그 사람 
               무슨 점성가니? 노스트라다무스처럼. 

여대생 :     (한심하다는 듯 한숨을 푹 쉬며) 아휴 이런 밥통하고는, 그 유명한 
               베스트셀러도 모르다니. 들어 봐, 
               거기서 이런 구절이 있어. 
               그림자가 사라지고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면
               남은 빛은 또 다른 빛에 대하여 그림자가 되는 것
               이라고 ...... . 그러니까 말인즉슨, 우린 좀 더 
               인내심이 필요하지 않겠느냐,  하는 
               이야기 아니겠어?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의 현실을 
               보듬고 긍정하는 것 말이야. 

남대생 :     넌 지금 
               정신적인 자유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구나, 하지만 
               그것은 위선이야. 인간은 자신의 주변 상황을 적극적으로 
               변화시켜 가는 가운데서만 
               비로소 자유롭다고 했어. 즉 다시 말해서 
               우리가 부자유한 상태에 직면해 있다면 그 인자들에 대해, 
               다름 아닌, 바로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그 모순들을 하나 하나씩 
               풀어나가는 가운데 비로소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다는 말이지. 
               이 문제와 연관된 아주 좋은 예를 하나 들어볼까? 
               어쩌면 우리의 주제와는 약간 다른 문제일 지도 모르겠지만 오래 전에 난 
               어느 민중 운동가인 한 분의 연설을 들은 적이 있었어. 
               거기서 그 분은 연설 도중에 청중들을 향해 이렇게 물었지? 
 

              (무대 중앙으로 가서 마치 
               연설자인 것처럼 열변을 토하기 시작하는데, 
               이때 백기완의 흉내를 가급적이면 낼 것)

고독이 무언 지 아십니까? 여러분 - 
(청중을 한번 두루 바라다보며) 
누군가 이유없이 나를 때렸을 때, 
아무 잘못도 없는 나를 
다짜고짜 주먹으로 때렸을 때, 
나도 그와 똑같이 놈의 아구를 한 방 
날렸으면 좋겠는데, 나는 힘이 없어 
그렇게 못해 ..... 응? 
(탄식에 가득찬 목소리로) 
그럴 때 우린 고독한 거야, 진정으로 
고독한 거야. 어릴 적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셨다거나 
사귀던 여자가 자길 버리고 도망가서 
고독하다 이런 게 고독이 아니야. 
힘이 없을 때, 나도 한 방 치고 싶은 데 안타깝게도 
힘이 없을 때 이게 진짜 고독이야 그러니까 우린 
힘을 길러야 돼 (단호한 표정과 웅변적인 톤으로) 
놈을 이기려면 힘을 길러야돼 ! 
(연설을 마치면 다시 무대의 여자 곁으로 온다).

남대생 :     어때 이 이야기 실감나지 않아? 정신적인 자유란 
               없는 거야 그건 거짓이야. 
               만약 너처럼 생각한다면 감옥에서도 자유는 
               있을 수 있게 돼. 하지만 그건, 거짓이야, 거짓이라구 - 
               만약 그것이 거짓이 아니라면, 
               패배와 인내가 같은 게 되는 거지. 그러나 
               패배는 엄연히 패배지 결코 인내와는 비교될 수 없어. 

여대생 :     (당황해서) 야! 
               너 무슨 말을 그렇게 장황하게 해서 날 몰아부치니 ? 
               난 다만 ... 

남대생 :     (흥분해서) 알어, 나두 네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 줄을 
               그러나 , 
               바로 그런 식으로 우린 우리 자신을 속여 온 거라고 
               억압받고 굶주린 사람들에게 변명해온 거라고. 
               감옥에 들어가 본 자만이 그 고통을 알 수 있는 거야 

여대생 :      (아주 화난 어조로) 흥, 그럼 넌 대체 뭘 했게, 그렇게 말하는 넌 
                대체 뭘 했지? 대답해 봐, 넌 뭐야? 뭐냐구? 

남대생 :      (갑자기 기세가 꺾인 듯, 풀이 죽은 표정으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아니 단지 그렇다는 거지 뭐 그냥 ... . 
 

남자 대학생의 말이 끝날 무렵 
무대 뒷쪽에 누워 있던 사내가 
부시시 일어나 그들에게 걸어나간다. 
조명이 사내를 향해 타오른다.

사내 :         (험악한 음성으로) 저리 가, 저리 가라구, 
                어디 와서 떠들고 있어 - 시끄럽게 굴지 말고 
                저리 꺼져, 꺼지라구, 자유? 

여대생 :      (수군대는 목소리로) 어머 별일이야 
                자기가 이 땅을 샀나? 
                얘 가자 어휴 재수가 없을라니까 별 .... 

남대생 :      으응, 그래 가자 어이구 - 
                (기어들어가는 중얼거림으로) 
                별 정말 미친놈이라니까 , 
                (단호하게 큰 소리로) 그래 가자. 
 

한 쌍의 남녀가 퇴장을 하고 나면 
사내는 관객들을 향해 
독백조의 긴 사설을 시작한다.

사내 :     (다소 광기 어린 목소리로) 뭘 모르는 군, 다들 인생 헛 살았어, 헛 살았다구요. 
            인생을 가장 철저히 이해한 자만이 자유가 무언 지 압니다. 자유란 바로 인간을 
            끊임없이 긴장과 불안으로 몰아 넣는 신의 노이로제가 아닐까요? 그런데 문제는 
            그 고통을 인간이 고스란히 감당해야 한다는 점에 있는 겁니다. 마치, 마시면 마실수록 
            더욱 더 심한 갈증만을 일으키는 바닷물같은 고통을 말입니다. 아까 그치들의 말도 
            일리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대안이 저와는 틀리죠. 사랑? 사랑이라구요? 천만에요 
            사랑이란 달콤한 말이야 말로 거짓 투성이죠. 싸운다구요? 투쟁한다구요? 
            그것은 더더구나 아닙니다. 누가 누굴 사랑하고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진단 말입니까? 
            (오른 손으로 무대 안쪽을 가리키며) 이 상황에서 .... (잠시 말을 끊었다가) 신이 맞아야할 돌을 
            왜 우리의 형제자매가 맞아야 한단 말입니까? 그리고 사랑을 해야하는 쪽도 오히려 
            신 쪽이 아닐까요? 그러나 이젠 그런 이야기도 소용이 없습니다. 신은 이미 
            100년 전에 죽었습니다. 우리의 신은 벌써 더 오래 전에 죽었구요. 
            마치 자식들을 대여섯 씩이나 쏟아놓고 저 먼저 가버린 무책임한 부모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그 망령이 도처에서 뻔뻔스런 부활을 꿈꾸며 계속적으로 
            인류에게 발암을 일으키는 미끼를 던지고 있습니다. 전 이점이 몹시 못 마땅합니다. 
            그러나 전 유치하게 신에게 저의 불만의 화살을 돌릴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대신 전, 
            제 자신에 대한 반항을 전개할 겁니다. 부활을 꿈꾸는 신의 면전에 
            페퍼보그를 쏘아주는 대신에 전 저에 대한 반항을 전개할 것입니다. 
            그것이 곧 신에 대한 반항이고 투쟁이고 또 사랑니까요... . 전, 이 역설이 통하는 길을 
            알고 있습니다. 참다운 자유는 이렇게 힘들고 복잡하게 획득되는 것이 아닐까요? 아니, 
            획득이 아니라, 이런 식으로 해서 각자의 마음에 상감처럼 각인되어지는 것이 아닐까요? 
            자유는 애초부터 그 모습이 없었으니까요 ..... . (잠시 정신이 들어 관객을 의식한 듯) 아, 
            제가 너무 혼자 떠들었나 보군요. 죄송합니다. 대신 제가 
            사과의 뜻으로 저의 시 몇 편을 들려 드리겠습니다. 괜찮겠습니까? 
 

                        관객들이 동의하면 다른 낭송자가 무대 중앙의 단으로 나와 낭송을 시작하고, 
                        시가 낭송되는 동안에 사내는 시에 화답하는 춤동작을 온몸으로 연출해 낸다. 
                        이 때 사내의 몸동작은 관객들로 하여금 희화적인 느낌 속에서 웃음을 자아낼 
                        정도로 반어적인 느낌을 주도록 신중하게 해야 한다. 
 

시 낭송자 : 

 
파전

난 자유롭다 

자유의 굴레를 벗어난 난 
자유롭다 거주지가 서울인 난 
유리창을 깨고 도망쳤지만 

스트라빈스키 스트라빈스키 

난 자유롭다 돌을던져라 
돌을 던져라 난 자유롭다 

승강구의 문은 자동으로 개폐되고 
태양은 눈발처럼 이마 위에 펄럭이고 
게다가 지금은 얼마쯤의 돈도 있으니 

난 맘만 먹으면 부산까지라도 갈 수가 있다 
난 맘만 먹으면 창녀도 살 수가 있다 
난 죽을 수도 있다 살 수도 있다 

그리고 다시 버스를 탈 수도 있다 

눈을 떴다 감았다 할 수도 있다 
나무 위에 올라가 술을 마실 수도 있다 
술대신 종이비행기를 날릴 수도 있다 

난 자유롭다 급류처럼 자유롭다 

난 시계의 태엽을 끊을 수도 있다 
지구의 표면에 흠집을 낼 수도 있다 
겨울이 오면 롱코트를 입을 수도 있다 

난 자유롭다 자유롭다 
도대체 자유롭다 
 
 

지평선

난 이대로가 좋아 
내가 움직인 나의 팔다리 
나는 얼마나 자유로운가 

수평으로 완결된 사각의 
견고한 보도블럭을 지나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임의대로 커브를 틀고 
임의대로 휘청거리는 
내 미열의 단백질 
나의 유복한 말초신경들 

나는 지금 나의 손을 흔들고 있다 
나는 지금 나의 발을 옮기고 있다 

이렇듯 나의 수족이 순차적으로 전진해 가면 

나의 몸은 지상을 연기처럼 떠다니리 
나의 몸은 지상을 속박없이 떠다니리 

난 이대로가 좋아 
내가 움직인 나의 팔다리 
나는 얼마나 자유로운가

소리들 :      전교조를 사수하라 

                        (비탈리의 샤콘느가 무대에 비장하고 장엄하게 울려 퍼진다) 

               임 수경 양의 방북을 우리는 환영한다. 

               문 익환 목사를 석방하라 

               노점상의 생계를 보장하라 

               노동3권 쟁취하여 민주사회 앞당기자 

                        (이들 소리들은 사회적 상황에 따라 언제나 새로운 각색이 가능 함) 

                        소리가 들릴 때마다 사내는 고통스럽게 움츠리며 경련한다. 이윽고 시위대와 
                        전투경찰과의 격렬한 싸움 소리가 무대 뒤쪽에서 마구 터져 나온다. 사내는 바닥에 주저앉아 
                        이마를 감싸쥔 채 신음과 가쁜 호흡을 몰아쉰다. 시위 군중들이 던진 것으로 보이는 
                        시위도구들 - 벽돌 조각, 부러진 막대기, 등등이 무대 안으로 떨어진다. 
                        음악이 갑자기 꺼지고 구급차 소리가 스피커로 크게 울리고 싸움이 끝난다. 
                        조명이 꺼지고 무대는 다시 칠흑같은 어둠에 휩싸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