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혹의 시학- 통일을 위하여

1) 통일호와 새마을호

한 이태 전(88년) 여름, 한 달 남짓 전국 각지를 떠돌아다니며, 이른바 여행을 한 적이 있다. 동기는 그저 보들레르 식으로 떠나기에 떠난달까? 아무튼 그 당시 나의 짐은 겨우 기타 한 대와 텐트 하나 그리고 옷가지 몇 벌에 가진 여비라곤 약 2만원이 전부였다. 덕택에 고생도 많이 했고 그런 덕에 퍽 재미도 있었다. 그래서 지금도 생각컨데, 여행이란 역시 좀 고생이 되더라도 온몸으로 해야 제 격임을 부인할 수가 없다. 푹신푹신하고 편한 의자에 앉은 채, 고속버스 내지는 특급열차를 타고 다닌다거나 따뜻한 방, 좋은 음식 등은, 아무래도 이 세상과 삶에 대해 무언가 많이 느껴야 할, 수많은 젊은이들을 비롯한 나같은 이에겐 오히려 방해가 될 뿐이다.

난 수많은 각양각색의 사람들과 만났으며 -물론 여자들도 포함하여- 곳곳의 낯설은 자연경관들과 마주쳤다. 공포와 경이감이 뒤범벅된 흥분 속에, 난 나의 감정이 뻗어가는 대로, 솔숲 사이로 부는 바람이면 바람, 계곡 아래로 흐르는 물이면 물, 산정 위로 피어오르는 구름과 안개, 제방 위로 철썩이는 파도, 급경사진 가파른 언덕, 젓소 무리들이 노니는 목장, 그늘진 오솔길, 철책이 둘러쳐진 포도농원, 갈대밭, 이름을 알 수 없는 수많은 들꽃들..., 어디든 마다하지 않았다. 설악에서 2박 정도 잡고 동해를 따라 내려가 경상, 전라, 충남 순으로 한 바퀴 순회한다는 기본 구상을 제외한다면, 난 단 한번도 여정을 계산하느라 골머리를 썩히지 않았다. 고프면 먹고 가다 지치면 쉬고 즐거운 일 있으면 놀고 졸리면 자고 그저 발길 닫는 대로 걷고 또 걸었다. 식생활의 해결은 사춘기때(?) 연마해둔 기타솜씨 덕분에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고, 짐은 텐트가 있으니까 염려 없었다. 그러니 돈이 든다면 "여어기"서"저어기"로 아주 크게 이동할 필요성이 있을 때만 소용됐던 삼등열차와 시내버스의 찻삯 뿐이었다. 이를테면 강원도 정선에서 사북으로 간다던가 사북에서 충북제천으로 간다던가 할 때만 말이다. 이때 내가 가장 많이 이용한 열차 편은 기차였고 그 중에서도 삼등열차인 비둘기호였다. 물론, 여행 당시엔 버스를 포함, 운좋으면 승용차, 용달차, 대형트럭, 오토바이 할 것 없이, 하다못해, 딸딸이까지 탔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많이 탄 건 역시 기차였다. 결코 기차가 빠르거나 값이 싸서가 아니었다. 어떻게 하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기차를 안 좋아한다는 이야기는 물론 아니다. 반대로, 기차는 내게 매우 친숙한 차량에 속한다. 그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기차는, 그것의 향수 어린 과거 지향적 요소 말고도 그것이 지나고 내어가는 길의 특이성으로 인해, 혹은 안정성으로 인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우리에게 호감을 줄 소지를 다분히 지니고 있다. 언제나 교외지역의 푸른 들판과 야산, 해변가, 싱그러운 공기, 한 두번은 지나기 마련인 아슬아슬한 터널과 철교, 고향의 시골 정거장 등등으로 우리들을 쉽게 연결해 준다. 또한 이리저리 커브를 틀고 진동이 심하고 시끄러우며 대부분이 복잡한 대도시의 거리에서 우왕좌왕 설쳐대는 택시나 버스에 비해 기차는 얼마나 리드미컬하고 우둔하고 외곬인가 ! 탄탄한 대지에 기초를 두고 강철로 뻗은, 두 줄기의 평탄한 철로를 따라 경적을 울리며 우직하게 항상 앞으로만 나아가는 기차야말로, 그 어떤 교통수단과도 전혀 다른 그만의 독특한 운항법을 터득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요소들이 아마도 우리들이 기차에 대해 갖는 알 수 없는 정감과, 그것 역시 기계문명의 산물임에도 불구하고 결코 낯설지 않은 묘한 행복감과 충족감에 대한 다소간의 해명이 될 것이다.

그런데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기실 그와 같은 기차에 얽힌 개인적인 로맨스 만은 아니다. 그것은, 이미 위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사북에서 제천으로 갈 때 내내 불쾌감을 안겨준, 그리하여 그것은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을 약간은 우울하게 만들, 아니 어쩌면 슬프게도 만들어 버릴 지 모르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만 피하고 싶은 그런 이야기이다. 특히 통일호나 비둘기호를 탔을 때에 왠지 모르게 불쑥 치솟는 무력감과 분노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모두 편하고 감미로운 이야기만 하고 쓴 약 먹기를 주저한다면, 우리들의 의식은 너나 할 것 없이 금새 윤기와 탄력을 잃고 마는 것을... .

들은 바 있겠지만, 우리들의 언어습관이 곧 우리들의 사고를 지배한다는 사실을 잘 알 것이다. 뿐만 아니라, 좀더 반복되고 극단화되면 행동까지 지배하게 됨을. 이런 상식화된 말을 내가 난데없이 꺼내는 이유는 다름 아닌, 아직까지도 3등 열차 신세를 못 면하고 있는 비둘기호와 그보다 더욱 더 비참하게 버림받고 있는 통일호의 초라한 모습 때문이다. 물론, 좀더 거시적인 입장에서 보자면, 특등이고 1등이고 2등이고 3등이고 하는 차등적 사고방식도 사라져야 할 괴물이긴 하지만, 모두가 똑같을 수 없다는 소위 근원적 불평등을 다소간 인정하는 견지에서 보자면 - 더구나 여기는 지금 자본주의 국가가 아닌가 -, 특급열차는 당연히 통일호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이 세상에 잘못된 걸 논하자면 결코 한둘이 아니겠지만,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다. 참으로 가치 있는 것에 그에 걸맞는 의미부여를 한다는 게 고작 '특급열차는 새마을호'인가? 당장 "현금"의 열차 이름들을 여러분들의 머릿속에 떠올려 보라 ! 얼마만큼, 우리의 언어습관 속에마저, 지배체재의 논리가 강하게 삼투되었는 지를... .

우리나라의 열차는, 모두가 잘 알고 있겠지만, 특급이 새마을호, 그 다음 1등이 무궁화호, 2등이 통일호, 3등이 비둘기호이다. 그러니까 엄밀히 따지자면 3등급이 통일호이고, 4등급이 비둘기호인 셈이 아닌가? 새마을 운동하면 제 3공화국으로 들어선 박정권이 71년 무렵부터 대대적으로 벌였던 농촌사업 중의 하나임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농촌사업이 지붕개량이니, 부엌개조니, 퇴비증산이니, 농촌지도자 양성 등 다소간의 (가시적인 면에서) 긍정적인 면은 있으나, 결국 지방의 자주성을 말살하고 군은 물론 소읍까지 철처히 중앙집권화하는 역기능을 드러냈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 점을 염두에 두고, 이러한 담론형태를 면밀히 고찰하면 쿠테타로 군사정권을 세운 제 3 공화국의 의도가 (혹은 본질이) 무의식 중에 분명히 노출된다. 그것은 다름 아닌 '독재자에게 충성을'로 집약할 수 있다. 새마을 운동은 박정권의 대표적 정책이었고 무궁화는 나라의 꽃이므로 다음과 같은 부등식 - 박정희=새마을=특급>무궁화=1등> 통일=2등>비둘기=3등 - 이 성립하는데, 이는 곧 통일을 후미에 두고 실상은 원치 않는 독재정권의 기만적 가치관과 포악성을 단박에 보여주는 것이라면 지나친 과장일까?

그런데 문제는 거기에 머물러 있지 않고, 제 3공화국의 산물인 그 이름들이 아직까지도 그대로 쓰여지고 있다는데 있다. 그리하여 우리가 모처럼 여행을 할 때 덜거덕거리는 의자와 벗겨진 페인트, 밑판이 다 낡은 바닥, 고리가 부서진 유리창, 위험한 승강대, 코를 찌르는 악취와 불결로 뒤범벅된 비둘기호나 그보다 훨씬 처참하게 내동댕이쳐진 통일호를 타야만 하는 불쾌감에 휩싸이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난 - 우리의 이름과 자격으로 - 철도청에 건의하고 독자들에게 제의하고 싶은 게 있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이 열차들의 이름은 반드시 고쳐져야 한다는 사실, 즉 정확히는 그 이름들의 자리바꿈이 진실로 시급하다는 말이다 : 새마을호 자리에 다시 통일호가 쓰여져야 하며 무궁화호 자리에 비둘기호가 자리잡아야 한다. 한국의 통일은 세계평화의 "선결조건"이므로 비둘기호는 마땅히 통일호에게 자리를 양보해야한다. 그리고, 새마을호와 무궁화호는 하루빨리 본분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런데 한편, 생각해 보면, 어찌 복원되지 못한 것이 비단 통일호 뿐이겠는가. 아직도 새마을호의 망령들이, 아니 좀더 거슬러 올라가서 일제식민주의 망령들이 도처에 발을 뻗고 꿈틀거리는 지금, 그것들이 어디서 얼마만큼의 그럴듯한 가면을 쓰고 징그러운 아가리를 벌리고 있을 지를 생각해보면 그저 암담하기 짝이 없다. 그리하여 난, 새마을호에 다시 통일호란 이름이 큼지막하게 새겨지고, 다시 그 특급열차 통일호가 이름값을 제대로 해, 휴전선 철조망을 뚫고 힘차게 내닫는 그 날이 하루 빨리 와야함을 절실히 느낀다. 그리고 바로 그렇게 되었을 때, 나의 여행, 아니 우리들 모두의 기차여행은 좀더 즐겁고 상쾌한 것이 되며, 나의 어린 시절부터 친밀하게 지냈던 기차에 관한 사색과 몽상이, 결코 어줍잖은 이데올로기나 사변으로 침해받지 않고 온전히 풍요롭게 피어날 수 있음을 비로소 확신하는 것이다.


- 1990 -



2) 통일은 자유로부터 시작된다

국가보안법은 한 마디로 지구상 어느 국가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촌스러운 법이다. 그 촌스럽다는 것이 요즘 흔히 이야기하는 로컬문화의 상대적 중요성을 의미하는 각도에서 차이성, 혹은 정체성을 주장하는 측면에서의 역설적인, 멋스러운 촌스러움=세련됨이 아니라 그야말로 세상물정 전혀 모르고 좌정관천하여 스스로의 귀와 코를 막은 채 밖으로 상고시대 도포자락 휘날리는, 그러니 그것은 비상식을 지나쳐 어리석음이라 해야 할 것인데 그러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니 그게 바로 내가 말하려는 국가보안법 그 시대착오의 촌스러움인 것이다. 이유인즉, 사실은 국가권력에 대해 언제나 거리를 둔 채 감시자의 입장에 있으며 국가가 제대로 그 권력행사를 정의롭고 성실한 방향으로 수행하지 못했을 땐 주저없이 비판의 채찍을 드는 지식인들의 그 본래의 생리는 물론 권력과의 미묘한 함수관계, 그 당연한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메커니즘을 아예 근본적으로 전면 무시하고 있기 때문인데, 이쯤되어 -도대체 국가와 사회체제를 달갑게 여기는 시인 예술가 이 세상에 있으면 한번 나와보라-고 외치니 사방 팔방에서 너나 할 것 없이 -나는 아나키스트, 나는 보들레르 당디, 예술 지상주의자, 나는 히피 비트, 나는 싸이키델리스트, 나는 노자 장자, 나는 불가 도가 - 등등 그야말로 한이 없지 않는가.

그런데 지금이라도 당장 국가보안법 전문을 읽어보노라니, 그 명확한 기준도 구체적 사례도 없는, 귀에 걸면 귀걸이고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이 되는 그 모호하기 짝이 없는 문항들이란 창의적인 모든 지식활동이나 예술활동을 하는 이내들이라면 결코 이 그물을 벗어나기가 어려운 실정에 있음을 분명히 인식해야만 한다. 다시 이야기하자면, 권력을 쥔 자가 맘만 먹으면 자신을 사회를 향해 비판적 올바른 말을 하는 사람들을 언제든 꼬투리를 잡아 형법상의 제재를 가할 수 있는 수 있는, 그렇다면 21세기 첨단을 지향하는 대한민국에 이런 촌스러운 법 그래서 내게는 그야말로 말도 안 되어 보이는 천하의 이 악법이 왜 아직도 존재하고 있는가? 그건 다름 아닌 남한과 북한의 통일을 가로막는 사람들의 반통일적 발상, 혹은 통일에 대한 생각은 있어도 명확히 그 방법에 대해 미처 천착해보지 않은 사람들의 즉, 통일이론의 한계로 인한 것이 아닌가 한다.

"통일은 자유로부터 시작된다"는 다소 역설적인 화두를 이 글의 제목으로 선정한 것은 바로 이런 연유이다. 관용과 용서, 화해와 사랑이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위해 필요한 것도 사실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자유로부터 시작한다는 점을 직시하여야만 할 것이다. 그리하여 만약 자유가 없다면 전자들도 그 효력을 상실하고 마는 것에 대해 또한 차근차근 짚어나가야 하리라. 부연하자면 참다운 자유, 그 모든 종파와 이데올로기를 초월한, 아마도 자유의 본래의 모습, 그 절대성, 그리하여 다시"절대적 자유"라고 일컬음 외에 달리 명명하기 힘든 그런 자유의 중요성에 대한 자각, 정치적 입장에선 그 자유를 체계적인 정치적 기구를 통해 실현화할 수 있는가 없는가가 마침내 하나의 과제인데, 그것은 다름 아닌 정당과 같은 정치기구의 설립에 대한 문제일 것이다. 중요한 질문이란 그리하여 한국 남한엔, 북한엔 이 자유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답은 아주 부정적이다 ; 잘 알다시피 남한엔 극우는 있는데 극좌는 없다, 올해 선거에서 겨우 민주 노동당이 입성을 했을 정도이다. 반면에 북한은 완전 일당 독재로서 남한 쪽에서 보자면 극좌 하나가 모든 것을 관장함으로 인해, 아무리 주체사상을 잘 이해하고 좋은 점수를 준다해도 이 극좌마저 존재한다고 이야기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왜냐하면 좌우란 상대적인 까닭에... .

이런 점에서 볼 때 통일을 먼저 주도할 수 있는, 아니 그보다는 우선 책임을 질 수 있는 쪽은 그러니까 경제적으로 열악하고 정치적으로도 더 폐쇄적인 북한이 아니고 바로 남한이다. 공산주의가 천국으로 가는 하나의 구원의 패러다임처럼 유행하던 시절 남조선 해방혁명과 통일의 기치를 걸고 무력으로 그 일을 감행하려 했던 북한의 순진한 무모함과 어리석음에 특별한 기대를 하기는 솔직히 힘들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그 결과 지향적인 실험은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사정이야 어떻든 희생양으로 몰아 넣은 결과를 낳았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공산주의도 오늘날 다른 모든 사상들처럼 하나의 자유로운 인간의지 표명에 기인하는 것이므로 평등하게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는, 말하자면 아주 당연한 사상의 자유의 표현에 대한 권리를 스스로 박탈하도록 만들었다. 특히 한국의 경우 6.25를 처절하게 경험한 세대에게 있어선, 다시금 그런 사상을 밑받침하는 자유에 대해 용서 내지는 수용불가능 하도록 하는 풍조에 결정적인 악영향을 끼쳤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한국 남한에 살고 있는 대다수의 일반 시민들 중에 공산주의를 자유의 토대가 된 하나의 이념이나 이데올로기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아주 소수의 자생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을 빼놓고는 없을 지경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 점은 공산당이 적어도 소수로서 자기 목소리를 꿋꿋이 유지하고 있으면서 -그렇기 때문에 나는 적어도 그들에게 배워야할 점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아무 탈없이 자유의 양 날개를 잘 가꾸어 펼쳐나가는 민주주의에 적어도 우리보다 경험 많은 몇몇 서구 유럽국가들의 정치 현실과는 아주 대조적인 상황이다.

그러면 누구나 다 알고 있을 이런 명백한 사실들에 대해 내가 길게 이야기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한국의 통일을 가로막는 장벽이 툭하면 너도 나도 이야기하는 어마어마한 경제적 문제, 즉 막대한 통일비용 때문이 아니라, 사실 그보다는 해방이래 지금까지 남북을 가로막고 있는 이데올로기적 장벽 제거의 선행이 필요함을 다시금 역설하고자 함이다. 그리고 이 문제의 정치적 해결을 위해선 단언하건데 한국 남한에는 공산당이 생겨야 하고 북한엔 이곳 서구 영미 사회의 그 어떤 정치 모델을 흠모하다 무고하게 수용소에 감금된, 그리고 아직도 감금되어있는 수많은 "자유주의자"들이 떳떳이 설 수 있는 정치적 틀을, 말하자면 "리버럴 캐피틀 데모크라시당"이 생겨야만 비로소 가능하리라는 것이다. 그런 연후 때가 되면, 말하자면 경제적 능력이 양쪽 모두를 감당할 만치 이르렀을 때 남북 전체를 대표하는 국가의 지도자들을 총선으로 페어 플레이를 하여 선출함으로서 명쾌하고도 평화로운 아주 깨끗한 통일에 도달하는 방법이다.

물론 또 이에 대해 사람들은,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커다란 우려의 목소리로 내게 물을 터인즉, "아니 시인나리 그러다 우리나라 전체가 완전 공산주의 빨갱이 나라가 되면 어쩔라구요? 어쨌든 난 공산당이 싫어요. 게다가 한국이 쿠바나 중국처럼은 될 수 없지 않을까요... " 등등. 하지만 이런 걱정은 내 장담컨데 우문에 지나지 않는다. 한마디로 말해서 통일의 중심축도 또한 통일을 완수할 수 있는 정치세력도 극좌나 극우가 아니고 이른바 홍 세화가 언제가 르 몽드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처럼 중도좌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아주 당연한 것이다. 그 이유는 한국의 통일은 남북의 이데올로기 차가 정치적으로 아직도 극심한 마당에서 남한의 미국형 민주주의에 의한 일방적 주도로나 혹은 북한의 꼬뮤니슴이, 말하자면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기에 급급한 정치 헤게모니가 통일정부의 중심에 도저히 설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한국통일은 그러므로 이 남과 북에 대한 서로의 이해가 가능한 중도좌파가 - 적어도 이런 점에선 프랑스의 정치적 패러다임을 통해 교훈을 얻을 수 있는 - 70 % 내지 80 %의 대국민적 지지를 받는 가운데 나머지 20-30%의 정치적 불만을 다독거려나가는 가운데 가능한 것이다. 100%지지를 받는 통일국가에 대한 망상은 물론 그러므로 버려야 한다, 마치 지구상에 그 어느 온전한 민주국가도 100%의 전국민적 지지를 얻는 정부의 건립이 불가능 한 거와 마찬가지로.

***


이제 내 나이 낼 모래면 벌써 마흔, 이른바 불혹의 나이다. 반평생에 가깝도록 작가로서 그 동안 별로 한 일도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국가보안법을 계기로 통일문제에 대해 곰곰이 천착을 했다. 딴에는 보는 바와 같이 지금껏 이야기한 이 방법 외엔 더 좋은 방법이 없다고 결론을 내렸거니와 혹은 이 방법 외에 달리 방법이 있지 않다는 생각에 도달했다. 나의 생각이 옳은 지 그른 지는 독자들의 판단에 맡길 일이며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에 누군가가 더 좋은 의견이 있다면 고집부리지 말고 주저하지도 말고 그의 의견을 따라야 하리라.

통일의 필요성에 대한 소견은 벌써 한 15년전 쯤인가... 쓴, 나의 개인 홈페이지에 일부러 읽기 수월치 않게 올려놓은 수필 통일호와 새마을호에서 엿볼 수 있듯 몸소 여행을 하면서 체험적으로 느낀 아주 당연한 상황으로부터 시작되었는 바, 그리하여 또 내게는 사실 단지 통일문제보다는 이상과 현실이 따로 분리되지 않고 함께 가길 지향했던 나의 문학예술 행위에 대한 메타포적인 의미가 그 글의 핵심 주제였던 까닭에, 나 자신 통일의 방법적 문제에 대해서까지 깊이 숙고해보지 않았다가 현재 국가 보안법 폐기문제로 국론이 분열되어 온 한국사회가 한창 시끄러운 이 즈음에서야 비로소 그간에 가지고 있던 생각들을 구체적으로 정리 발전시켜 보기에 이른 것이다. 헌데 참으로 신기하다못해 신비하기까지 한 것은, 나 자신 돌이켜보니, 이러한 나의 글쓰기 여정들이 대부분 삶의 여정들이 그렇듯, 그냥 단순한 우연같지가 않다는 것이다. 마치 올해 지난 8월 초로 운명한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프랑스의 그 유명한 르뽀르따쥬 사진가, 특히 "결정적 순간"으로 너무나도 우리에게 친숙한 앙리 까르띠에 브레쏭이 유언으로 남긴, "우연은 없다, 단지 만남이 있을 뿐이다" 란 마지막 말이 다시 생각나듯... . 박근혜처럼 이름있는 정치가도 아니고 그렇다고 구한말의 만해 한 용운처럼 뛰어난 사상가도 아닌 내가 한 게 있다면 아마 "한 끼를 꿈꾸는 마음"으로, 이런 당연한 누구나가 가슴에 품고있는 자유의 중요성, 아니 그보다는 오히려 "상식성"에 기초를 두고 통일문제의 해법을 찾느라 고심할 적에도 이 세상에는 통일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그냥 이대로"의 안정을 원하는 순진하고 무지하기 때문에 이기적인 기득권 층들도 없지 않아 있는 걸로 일고 있다. 하지만 난 통일이 우리나라가 일단은 지구상에 단 하나 남은 분단국가라는, 그 자존심 상하는 오명을 벗기 위해서라도, 아니 무엇보다도 가고 싶어도 자유로이 갈 수 없고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제 고향 땅, 그곳에 있는 자신의 처와 남편, 부모형제, 친척들을 자유로이 만날 수조차 없고 끝내 떨어져 살아야하는 수많은 이산가족들의 "견우직녀행" 열차를 이제 그만 폐쇄시키고, 대신 그 자리에 미래를 향해 활짝 열려 힘찬 기적 소리를 울리며 달리는 우리들 모두의 "통일행" 열차를 세우기 위해서라도, 말하자면 그 일차적인 이유, 즉 인도주의적인 입장에서 반드시 통일은 되어야한다고 생각한다. 남북에 그어진 휴전선으로 인해 드는 막대한 군사비 지출, 그 천문학적인 수치의 어마어마한 경제적 공칼로리에 대해서는 그러므로 이 판국엔 차라리 부차적인 사항이라 싶다. 이를 위해선 앞서 말한 것처럼 먼저 남한 쪽에서 화해와 용서의 손을, 다름 아닌 자유의 이름으로 먼저 내밀어야 함을 또한 역설하고 싶다. 그 구체적인 방법은 바로 공산당의 남한 내 완전 허용인 것이다. 치정자에의 입장에서 보자면 문제시되는(?) 이 공산당원들이 정치체제로 편입되어 그들의 아이덴티티가 다 개방되면 관리하기도 오히려 수월할 뿐만 아니라 기회주의적 가짜 공산주의 브로커들도 그땐 활개를 못칠 것이니-왜냐하면 멍석 깔아주면 재미없다고 그만 두는 넘들도 많을 테니 - 이거야말로 일거양득이 아닌가? 게다가 불만에 가득찬 불법세력을 합법화시켜주는 격이니 민주주의의 한 층을 더한 성숙으로 평가될 것은 두 말하면 잔소리이다. 그리하여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런 식으로 "먼저 손을 내미는 자가 그래서 화해의 제스처를 취하는 자"가 통일의 열쇠를 쥔 형인 것이다.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형이 결정되면 -나는 분명히 장담컨데 - 아무리 철이없는 동생이라도 형을 따라오지 않겠는가 하는 낙관적인 전망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한국 남한의 정치 지도자들이 대북관계에 임하는 형의 입장으로서의 마음가짐이란 지난 몇해 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던 김 대중 전대통령이 시도했던 햇볕정책의 연장에 서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적어도 그가 노벨상을 수상한 게 된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 듯이... . 어린 시절 우리들이 보았던 그 어떤 우화에서도 자명하게 읽을 수 있듯이 힘을 앞세운 강한 바람으로 (여인네의) 두터운 외투를 벗긴다는 것은, 그래서 남북이 이데올로기의 장벽을 뛰어넘어 알몸으로 만난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이 글의 제목 "통일은 자유로부터 시작된다" 는 명제는 그러므로 해방 이후 서구식, 아니 미국식 거짓 자유 민주주의에 갇힌 지난 60 여년 간의 틀좁은 자유에 대한 사색의 한계를 드러내야하는 사명에 직면해 있음과 동시에, 오늘날 새로운 각도에서 적극적으로 수많은 남한의 자생적 공산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자유를 인정해주는, 그래서 북의 형제자매들을 껴안을 수 있는 하나의 정치적 씨스템을 마련하는 길과도 방법적인 면에서 직접적으로 맥이 통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통일을 적극적으로 주도하고 그에 참여하는 방법인 동시에, 결과적으로는 마침내 통일에 이르는 길이고, 더 나아가서는 미국식 자유주의에 여지껏 숨을 헐떡이며 만신창이가 된 한국의 자유에게 참다운 얼굴을 되찾아 주는 것이기도 하다는 그 절실한 믿음 때문인 것이다.


-2004년 10 월-



1) 통일호와 새마을호, 1990년 홍익대 불문학과 학술지 Nous N° 2 에 발표
2) 통일은 자유로부터 시작된다, 2004년 홈페이지 및 인터넷을 통해 발표


작가소개 - 김 창겸 (1966-) : 재불시인, 예술가, 빠리 8대학 불문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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