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 발 행 (말과 그의 詩學)
 
 

말은 모방한다 그가

말문을 열고 나설 때

그가 글쓰기를 시작할 때

말은 모방한다 그가

본 것 들은 것 읽은 것들을

그러나 그는 또 모방한다

대지의 바람과 고통 비

달빛 산 자들의 외로운 넋

머나먼 별빛들의 비밀스런 밀어들을

말은 모방한다

영겁세월 검은 침묵의 껍질을 깨고

백지의 수면 위로 추락하듯 빠져들 때 말은

언제나 내달린다 눈을 뜨자 마자

일어서자 마자 그가 숨쉴 때

피로에 헐떡일 때 조차 그는

모방한다 사랑하는 아내와 이웃들의 탄식

맹수들의 굶주림

돌과 풀 나무들의

거울들의

부서진 손짓과 몸짓

그 목소리들 한숨들을

그는 모방한다

그 우뢰와같은 카오스 전투의 소용돌이

그 침묵들 평화들을

그는 각인한다

끌과 망치로 비문을 새기는 석공처럼

책상서랍을 여닫으며

찻잔의 물을 데우며 온종일

백열등을 켯다 껏다 하며

서책과 침구를 정리하며

의료 보험증에 붉은 인장을 콱콱 찍으며

그는 그의 헛점, 헛점 투성이인 일상

일상의 반역마저도 기입한다

사전을 뒤적거리며

문법책을 뒤적거리며

그러나 또한 그것들을 일절 무시하며

왜냐하면 말은 그의 혀을 잃었으니까

왜냐하면 사실 그는 말할 줄 조차 모르니까

다만 끊임없이 행을 늘여가며

끊임없이 일보에 일보를 보태가며

파고다 공원위로 어느새 날아오르는 비둘기 떼처럼

바그다드 까페에 붉게 퍼지는 석양처럼

17 세의 나이로 유서를 써야했던 기 모깨처럼*

당당함과 함께

두려움과 함께

긴장과 열기와 함께

간즈러운 애무와 함께

치명성과 숙명성과 함께

벽에 걸린 칼과 해초의 장식

익명의 대중 인터넷의 그물망과 함께

함께 함께 있기 위해

그러나 또한 홀로 있기 위해

영구히 오토리버스되는

언제나 말은 중얼거린다

언제나 미지의 문턱에서 출렁거린다

단어들의 정원 속

실어증의 광대한 사막을 가로질러 자유와 천국

이승과 저승의 계단 주위를 무수히 맴돌며

말은 모방한다

그의 유년기의 천진성

천둥과 태풍 비구름이 질타하는

청년기의 광기들 난폭성들

산양떼에 휘말린 흰 대리석 술잔

그 최초의 잉여

그 최초의 시인과 부인

그 부질없음에 무심히 화답할 때

그러나

그 때 조차 그 때 조차 그는 모방한다

말의 땀과 검붉은 눈망울

채찍으로 핀 한 폭의 혈화

그의 푸른 머리칼

그의 내장

그의 X와 Y를 그는

사색없이 성찰없이

머리에서 발끝까지 망치로

미이라에 쾅쾅 못질을 하며

깊이를 부여하기를 일체 거부하듯

전파와 빛의 속력으로 그는

빠르게 빠르게 굽이친다

수증기와도같은 말들을

연필의 유희와도같은 말들을

한없이 날아오르며 미끄러지는 그 무제한성들을

자유로이 허공에 풀어놓는다

자유로이 백벽에 상감한다

전 우주의 전체를

그를 사로잡는 전 우주를

말은 모방한다

그는 모방한다
 
 
 
 
 
 
 
 

* 기 모깨 (Guy MOQUET) :

공산당 당원이기도 했던, 그는 2차대전 당시 빠리 18구에서

레지스땅스의 일원으로 활약하다 나찌에 붙잡혀 17세의 어린

나이로 생을 마감해야했다. 현재 빠리 지하철 13번 역들 중

기 모깨(Guy MOQUET)는 그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며,

역 내에는 그를 추모하기위한 조그만 기념비가 마련되어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마지막 순간에 그가 그의 가족들에게썼던

유서 양식의 편지 한 통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