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 선이면 선이 아니다" 라고 하는 말이 우리 귀에는익숙하다, 선을 말할 때 전통적으로 우리는 그것을 그대로 받아 들였다. 고대중국의, 지금 이 순간엔 잘 기억나지 않는, 선승으로부터, 그리고 한국의 고대선승들, 특히 고려시대, 그리고 가까이는 일제시대 때 삼일 독립 선언문을 기초한만해 한 용운의 그 유명한 님의 침묵의 일 페이지부터도 선이선이면 선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 선이란 말하자면 유일선이요 절대선의 어느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보편 불가지의 세계이다. 그러나언제부턴가 "선이 선이면 선이다" 라는 시대로 우린 접어들지 않았나 싶다.어떤 한 시인이 세계 선사에 유래없이 자기 생전에 선이란 제목으로 한권의시집을 출간하는 주관적 행위를 볼 때, 혹은 인터넷 만다라의 수많은 선 망들을보면서, 이른바 "각선미"의 시대 그 역사가 도래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떨칠수가 없는 것이다. 선은 그러므로 중국이나 한국 등 아시아의 전유물만은 아니리라.오히려 서구의 정치적 경제적으로 민주주의가 더 발전된 나라에서, 문화적으로여유롭고 풍요로운 나라에서 더 정직하고 바른 선, 더 아름답고 착하기만 한,참선이 있을 수 있는 가능성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때문에 일찌기 선을 서구에아시아의 신비적 토산품으로 소개한 일본의 스즈끼처럼, 동양인인 우리들만의전유물처럼 선에 대해 우쭐할 필요는 아마도 없으리라.화석의각선미(3.1 시론) 문학적 공간으로 유명한 모리스 블랑쇼의JE passe au IL (나 -라는 주체는 - 그로 변화된다) 은 이런면에서 180도 수정되어야 한다 : IL passe au JE. (그 - 라는 비인칭; 비주체는 나로 변화된다). 다시 말해서, 선도 사실은 역사가 있었고개별적 깨달음의 분수가 흩뿌리는 오색 찰나의 아찔한 곡예가 아니었을지 ;오호! 화중연? 이제 다시 이런 귀절도 생각난다 : "치열하게싸운 자만이 자유가 무언 지를 안다". 진정 살아 있다는 것은 그리하여 온 살의세포들이 마치 이상의 오감도 제 1호의 시처럼 13인의 아해들이 모두 다 무섭다고할만큼의 공포를 느끼는 것 외에 무엇이 있을까. 그 어떤 미지의 세계에 대한새로운 발걸음 앞에, 새로운 모험 앞에, "권력"의 보수적 헤게모니 앞에, 마치매킨토시의 그 유명한 광고문안 Think different에서 보듯... . 그러니, 답은없다. 답하는 분위기만 있다. 답하는 분위기 그 몸 살이 곧 답이요, 그 프랑스를살찌우는 레페랑스처럼, 참조의 주가 곧 답이면 답이랄까 : "길을 잃었는데요선생님 - " "뭐라구? 예끼 인석, 네놈이 벌써 길 안에 있지 않느냐." 하는 선문답은그래서 이미 고전이, 썩은 선이 되어버렸다. 이 말은 우리 모두가 주인이 되는 각자의 주를 찾으라는이야기, 흉내가 아닌. 예술의 경우 그것을 모방설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모방이면창의적 모방인, 더 이상 노예가 되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이다. 동학에서는 인내천이라했으나 이제는 더 나아가서, 다시 말하자면 더욱 더 민주적인 아내천의꽃향기가 그윽히 흐르는 각선들의 거대한 교향악을 모색하는 시대라는 것이다.그런데, 한국 근.현대사를 돌이켜 오늘날까지도 안타까운 것은 과연 우린 진실로독립한가 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그 속에 사는 우리들은, 각각 독립한가하는 것이다. 풍자적으로 말해서 광복 이후 대한 독립 만세를 수없이 부르며갖가지 기념 공식행사는 오늘날까지 끊임이 없었지만, 상호공존 인류공영의당위성을 바탕으로 한 상호 주관성의 또 다른 표현인 독립의 그 정신을 과연잘 이어받고 살아가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나는 21세기의 한국시학에 대한 하나의 대안으로 초벽삼피향의 향 부적의 시학을 지난해 말 본지에 제기한 바 있다. 많은독자들이 그에 대한 궁금증과 해명을 요구해 왔고 그리하여 답변 겸, 거기에지금 다시 살을 붙여 반복하건데, 새 천년 한국 문화의 관건은 우리들 각자의처용화상인 형용 찾기이다. 그렇다면 형용은 무엇이며 우리들 각자의형용은 대체 어디에 있는가 라는 문제로 초점이 모아지는데, 여기에도 물론정답은 없다. 왜냐하면 위에서 이미 언급한 것처럼 각자선의 각선미처럼 각자답만이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난, 답 대신 단 한 단어를 10년만에 퇴고해 며칠전에 완성한 나의 90년도 데뷰작인 "행진곡" 에서 화석처럼 행진하는연필의 35행을, 부산하기만 한 새 천년 첫해의 3.1절 아침에, 아주조심스럽게, 또 하나의 화두로써, 여기 이, 최전선에던질 뿐이다. (빠리 지성 2000 3.1에서) |